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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은 각지의 창고를 조사하는 중입니다. 왕궁 안의 식량을 움 덧글 0 | 조회 66 | 2021-06-01 06:03:25
최동민  
대법관은 각지의 창고를 조사하는 중입니다. 왕궁 안의 식량을 움직이는 것은 재상의 긴급 명령으로도 가능한 일이 아닌가요?식용유 배분 건은 일단 왕궁 내의 띠축분을 풀어 나누어 주었다. 나머지는 다음해에 수확한 것을 글민에게 약속한 대로 반드시 선사한다는 뜻을, 곡물 징수관장이 발코니에 나가 군중에게 보고하여 그럭저럭 마무리가 되었다. 이어 새로 임명된 대법관이 엄숙하게 발표했다.그렇다면 타쿠하에트, 멤무트는 서기로 오래도록 열심히 일을 해주었으니, 내가 특별 대우를 해주겠어요 앞으로 멤무트가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할 수 있으면, 』러면 되죠?그는 우선 믐을 피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하였다. 아울러 가슴을 탁탁 치면서,이건 도저히 여왕 폐하의 말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사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올해 보기 드문 흥작으로 곡물류는 예년 수확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이어 군사령관 아킬라스도 거들었다. 폼페이우스는 제2의 알렉산더라 일컬어지는 분이옵니다만, 앞으로 2년이면 예순인 고령이라고 들었사옵니다. 만약 카이사르에게 패하였을 경우 백 척이나 되는 곡물을 지원한 우리 나라의 입장은 어떻게 되겠사옵니까.그러자 왕은 입을 닦으며,왕위를 노리는 음모인가, 테오도토스유언은 날을 잡아 나라의 주요 인물들을 모아를고 클레오파트라가 공표하였다.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든 표면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는 자는 없었다. 장차 국왕이 될 마구스가, 그럼 내 왕비는 누님이로군요 라고 신기한 일이라는 듯 물었을 뿐이었다. 왕은 유언까지 다 하여 마음을 놓은 탓인지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갔다. 자칫 혼수 상태에 빠지려는 것을 클레오파트라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마구스에게도, 우리들은 아직도 아버님에게 배을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니 너도 앞으로는 틈날 때마다 아버님 곁을 지키면서 기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국왕의 즉위식을 국가 제일의 경축 행사로 여기는 만큼 국민들의 기대도 컸다. 그날이 다가옴에 따라궁전 안의 각부서는 분주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클레
식용유 배분, 자연의 수수께끼그렇사옵니다. 아들 페르호르를 못 만난 지 벌써 7, 8년이옵니다. 이제 국왕 폐하도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신 치정을 돌보시기 위해 열심히 진력하실 것이옵니다.유모의 바람은 또한 모든 사람의 기대이기도 했는데, 로마군이 본국으로 돌아간 지금에도 왕궁 안의 분위기는 왕이 자리를 비웠던 때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12세는 원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직계가 아니었다. 봉기한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 손에 11세가 살해당한 후, 시민들이 서민 출신인 그를 왕위에 즉위시킬것이었다. 그런데 그 12세가 시민들에게 쫓겨나 국외로 도망할 수 밖에 없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평화롭고 위엄 있게 널리 정치를 편 것은 불과 3제까지였다. 4제 이후에는 왕위를 둘러싸고 왕족 간의 암살이 잇따른 데다 바다 너머 로마에 항상 위협을 당하는 처참한 역사를 갖고 있었다. 11세 때에는 로마의 권력자 술라가 개입하여, 다른 사람을 제치고 11세를 왕위에 즉위시켰다 그 후 11세는 술라에게감사의 뜻을 담아. 짐이 죽은 후에는 이집트의 모든 것을 로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달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문에 점성술사 중에는 신관 출신이 많았다. 지금 찾아온 이도 이 신전의 노신관과 인연이 있어서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유모도 주저하지 않고, 괜찮으시죠라는 다짐을 받고서는 방문자를 안내하석 데리고 들어왔다.페르시온에서 적군과 대치하며 개전을 기다리다 라피아에는 도서관도 없고 또 장서가라 할 만한 사람도 없었는데, 클레오파트라가 마구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비부로스 덕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리아 전기는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58년에서 50년까지 8년에 걸쳐 로마 군을 이끌고 갈리아에 원정 가서 그 전 지역의 평정을 이룬 과정을 다룬 전기로, 1년마다 한 권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무렵 로마에는 7권까지 나와 있었다 전문은 라틴 어로 씌어 있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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